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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버블 안의 소년: 데이비드 베더의 선천성면역결핍증 이야기

by 면역이야기 2025. 7. 26.

선천성면역결핍증과 ‘버블 보이’의 탄생

흔히 AIDS를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 하는데, 선천성면역결핍증으로 알려진 병이 있습니다. 보통 SCID라고 부르는 데, 이 질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정리하고 싶어서 나름 가장 자세히 확인해 봤습니다.


1971년 9월, 미국 텍사스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데이비드 베더(David Vetter)입니다. 그러나 갓 태어난 데이비드는 곧바로 어머니 품에 안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중증복합면역결핍증(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 SCID)이라는 유전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SCID 환자는 면역체계가 거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무해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조차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데이비드의 부모는 이미 첫째 아들을 같은 병으로 생후 7개월 만에 잃은 아픈 경험이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또다시 아들을 얻을 경우 50%의 확률로 SCID가 발현될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당시로서는 유일한 대처법이 멸균된 격리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며 적절한 골수 이식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고심 끝에 임신을 결심하였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출산 전부터 특수 플라스틱 격리 장치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무균 처리된 플라스틱 ‘거품’ 속이 데이비드가 처음 숨을 쉰 공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데이비드는 곧 언론에 ‘버블 보이’, 즉 “거품 속의 소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姓)인 Vetter는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세상을 떠난 후까지 10년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데이비드’ 혹은 ‘버블 안의 소년’으로만 부르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가 들어간 투명한 플라스틱 격리실은 일종의 인공 생명 공간이었습니다. 외부 공기와 접촉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철저히 멸균되어야 했습니다. 음식, 물, 기저귀, 옷가지 하나까지도 모두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로 4시간 이상 멸균 처리한 후, 최대 일주일간 환기시키는 과정을 거쳐야만 버블 내부로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멸균할 때 감마선 멸균을 하지만, 그전에는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를 이용해서 멸균했습니다. 이 가스는 매우 유독하기 때문에 멸균 후에 반드시 가스를 모두 날려버려야만 합니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최근에는 감마선 멸균을 합니다. 

 

사람의 손길도 직접 닿을 수 없어, 버블 벽에 부착된 특수 고무장갑을 통해서만 아기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방벽을 유지하기 위한 공기 압축기의 소음은 매우 커서, 안에 있는 아기와 대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의료진은 연약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데이비드는 생애 첫날부터 플라스틱 거품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플라스틱 공간 속의 성장

시간이 흐르며 데이비드는 그 투명한 세계 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와 의사들은 비록 공간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가능한 한 “평범한 어린 시절”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텍사스 휴스턴의 어린이병원 무균실에 마련된 그의 공간에는 작은 TV와 장난감, 학습 도구가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일정 연령에 이르자 병원에서는 선생님을 통해 격리실 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고, 부모 역시 아들이 일반 아이들처럼 배우고 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Texas Children's Hospital

 

데이비드가 세 살 무렵에는 일부 생활공간을 집으로 옮기는 실험도 이루어졌습니다. 의료진은 가정집에 추가로 멸균된 버블을 설치하고, 병원과 집을 오갈 수 있는 이동용 격리 캡슐까지 제작하였습니다. 덕분에 데이비드는 가끔 몇 주씩 집에 머무르며 부모, 그리고 누나 캐서린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캐서린은 비닐막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놀아주었고,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직접 피부를 맞댈 수는 없었지만, 형제간의 우애와 추억은 거품 벽 너머로도 깊게 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거품은 완전한 대체 현실이 되어주지는 못했습니다. 데이비드가 네 살이 되던 해, 그는 버블 안에 남겨졌던 주사침(버터플라이 니들)을 가지고 놀다 버블에 구멍을 내는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심각한 외부 노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은 아이에게 ‘세균’의 존재와 자신이 특별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라나면서 데이비드도 점차 자신이 유리벽 너머의 넓은 세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창밖 풍경과 TV 화면 속 세상에 호기심을 보이며, “언젠가 밖에 나갈 수 있을까?”라는 눈빛으로 부모를 바라보는 일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다행히 의학 기술자들은 그에게 작은 모험을 선사할 묘안을 마련하였습니다. 1977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진은 우주복 제작 기술을 응용하여 데이비드를 위한 특수 이동 슈트를 개발하였습니다. 이 소형 밀폐 우주복은 길이 2.5미터의 튜브로 데이비드의 버블과 연결되었고, 그 안에서 그는 마치 우주비행사처럼 온몸을 밀폐된 상태로 보호받으며 몇 걸음이나마 바깥세상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Baylor College of Medicine Photo Archives

 

 

다섯 살배기 꼬마에게 맞춰 특별히 주문 제작된 이 옷의 가격은 당시 5만 달러에 달하였고, NASA는 무려 54쪽 분량의 사용 설명서까지 함께 제공할 정도로 정교한 물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슈트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던 데이비드도 점차 용기를 내어 몇 차례 집 앞마당까지 걸어 나갔습니다. 그의 손을 붙잡고 함께 걸은 누나는 “동생이 정말 밖에 나온 것 같지 않다”며 울먹였지만, 정작 데이비드는 헬멧 너머로 신이 난 웃음을 터뜨렸다고 전해집니다.

 

이 “우주복 산책”은 총 여섯 차례 이루어졌고,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슈트는 금세 작아졌습니다. NASA가 새 옷을 보내주었지만, 데이비드는 점차 그 옷을 입기를 꺼려하였고, 그의 바깥세상 체험은 다시 창문 넘어와 화면 속으로 제한되었습니다.

가족과 의료진의 시선

데이비드의 부모와 주치의들은 이 작은 소년의 삶을 지켜주는 플라스틱 거품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공막越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돌보아야 했지만, 부모의 사랑과 헌신만큼은 그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습니다. 어머니 캐롤 앤(Carol Ann)은 훗날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아들이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의사들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오히려 그 거품에 감사했어요. 그 격리 치료법이 아니었다면 아들을 12년이나 우리 곁에 둘 수 없었을 겁니다.” 이어서 그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목표는 데이비드를 안전하게 지키고, 바깥세상을 안으로 가져와 주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부모가 이처럼 다짐하며 정성을 다하는 동안, 의료진도 데이비드에게 최대한 인간적인 일상을 제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주치의 존 몽고메리 박사를 비롯한 의료팀은 데이비드에게 정규 교육 과정을 가르쳤고, 병실 안에 놀이방을 마련하였으며, 심리학자 메리 머피는 아이의 정서 발달을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그 결과 데이비드는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도 친구를 사귀고, 누나와 티격태격 다투며, 용감하고 긍정적인 아이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머니 캐롤 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특별한 처지를 받아들이면서도 언젠가 거품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렸어요. 우리는 그날을 위해 사회성을 키워주고자 준비시켰습니다. 과학이 데이비드를 지켜주는 것이었지, 우리 아들을 실험 대상으로 여긴 적은 없어요.”

 

한편으로 부모는 어린 아들이 세간의 호기심에 노출될까 걱정하며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조심하였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여덟 살 무렵, 한 신문에 그의 사진이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 데이비드는 다음 날 어머니에게 “자기는 유명해졌으니 장난감 정리를 안 해도 된다”라고 천진하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그래, 너는 내 삶을 밝히는 스타야”라고 웃으며 대답하자, 그는 “내 사진이 신문에 났다니까. 스타들은 장난감을 안 치워도 되는 거야!”라고 우겼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오늘 신문엔 안 나왔으니까 오늘은 장난감 정리해야지!”라며 웃으면서 타협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데이비드는 거품 밖 세상이 자신을 향해 보내는 시선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한 아이로서의 일상과 유머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치료 시도와 이별

의학의 진보는 더디게 이루어졌고, 데이비드는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까지도 여전히 플라스틱 거품 속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의 치료에는 약 130만 달러의 비용이 투입되었지만, 결정적인 치료법이나 적합한 골수 기증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83년, 작은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보스턴의 연구진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골수도 특수 처리하면 이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실험적 치료법을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데이비드의 누나 캐서린의 골수를 이용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고 보았고, 위험도 “99% 안전하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고, 이식이 성공하면 데이비드가 비로소 플라스틱 거품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부모는 당시 열두 살이었던 데이비드에게 이 실험적 수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였고, 데이비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한 번 해보겠다”라고 동의하였습니다.

 

1983년 10월 21일, 누나의 골수를 채취하여 처리한 후 플라스틱 거품 속의 데이비드에게 주입하는 골수 이식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주사를 놓는 의사들의 손을 버블 벽越 너머로 직접 도우며 적극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수술 후 수개월 동안 그는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긍정적인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러나 1984년 1월, 데이비드는 생애 처음으로 큰 병치레를 겪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화씨 105도(약 40.5℃)의 고열이 오르고 구토와 심한 설사가 동반되었으며, 탈수 증세까지 나타나 의료진을 긴장시켰습니다. 원인은 예상했던 이식편대숙주병(GVHD)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누나의 골수 속에 숨어 있던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였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무해할 수 있는 이 바이러스가 데이비드의 무방비 상태인 몸속에서 폭주하여, 면역세포를 암세포로 변이 시키는 림프종을 유발한 것이었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부모와 의료진은 큰 충격과 비통함에 빠졌습니다. 데이비드는 점점 더 쇠약해졌고, 결국 생애 처음으로 플라스틱 거품 밖으로 나와야 할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1984년 2월 7일, 의료진은 데이비드를 거품에서 꺼내어 멸균 처리된 병실로 옮겼습니다. 가족들은 멸균 가운을 입고서야 비로소 아무 막 없이 그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누나는 동생의 맨살을 처음 만지며 “데이비드 목소리가 거품 밖에서는 다르게 들려” 하고 울먹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갈색 머리칼이 생각보다 훨씬 숱이 많고 부드럽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데이비드는 가족의 손길이 간질간질했는지 “간지럽히지 말라”며 웃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성 암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그의 몸을 좀먹고 있었습니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자, 어린 데이비드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젠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지쳤어요. 다 튜브 빼고 집에 가요, 우리”라고 힘겹게 말하였습니다.

 

2월 21일, 그의 오랜 친구이자 상담가였던 메리 머피가 병실을 떠나려 하자, 평소 “나중에 봐요”라고 인사하던 데이비드는 “제발 기억해 줘요, 메리. 사랑해요. 안녕”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에게 “나도 가족 모두를 사랑해요”라고 말한 후 담당 의사에게 눈짓으로 윙크를 보내고는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1984년 2월 22일, 데이비드 베더는 향년 1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멸균 마스크를 벗고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거품 속에서 태어나, 거품 밖 가족의 품에서 눈을 감은 그의 짧은 생애는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데이비드의 장례는 1984년 2월 25일, 텍사스 콘로에 있는 묘지에서 가족들의 슬픔 속에 치러졌습니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형 데이비드 3세 곁에 안장되었습니다. 생전에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못했던 소년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신문 일면과 TV 뉴스를 통해 ‘버블 보이’의 안타까운 최후가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의료계와 사회에서는 윤리적인 논쟁도 일었습니다. 어린 생명을 그렇게까지 인공적인 환경에 가두어 연장하는 것이 옳았는가에 대한 질문과, 장기 격리에 따른 정서적 고통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의 부모와 의료진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부모는 이후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지만, 어머니 캐럴 앤(이후 재혼하여 캐롤 앤 드마레)은 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같은 병을 지닌 아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반향과 의학적 유산

데이비드의 12년은 고립과 투병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현대 의학과 사회가 면역결핍증을 이해해 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은 미국 사회에 1차 면역결핍질환(Primary Immunodeficiency)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였으며, "버블 보이 증후군"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습니다. 데이비드의 사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들은 축적되어 이후 SCID 치료법 개발에 기여하였습니다.

 

실제로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스턴 텍사스 어린이병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데이비드 센터"가 개설되어 면역결핍 환자 연구와 치료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신생아 때 SCID 진단을 받으면 곧바로 골수 이식이나 유전자 치료를 시도해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얻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신생아 선별 검사를 통해 SCID를 조기 발견하고 있으며, 데이비드처럼 오랜 격리 생활을 겪지 않고도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의 어머니 캐럴 앤은 “데이비드의 용기 있고 인내심 가득한 삶 덕분에 많은 SCID 어린이들이 더 일찍 진단받고 조기 골수이식을 통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우리 가족은 물론 세상에 큰 축복을 남긴 셈입니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대중문화에 남은 이야기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대중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사람들은 이 특별한 소년의 삶에 관심과 연민을 가졌고, 그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와 드라마, 노래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가수 폴 사이먼은 1986년 발표한 노래 〈The Boy in the Bubble〉에서 현대 문명이 안고 있는 불안과 희망을 노래하며, 그 제목을 데이비드에게서 영감을 받아 붙였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시트콤 〈사인필드〉(Seinfeld)도 1992년 방영분에서 데이비드 사건을 풍자적으로 패러디한 “버블 보이” 에피소드를 선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것은 데이비드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었습니다. 그의 실화는 여러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투영되었으며,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허구의 드라마 속에서도 면역결핍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1976년 TV 영화 《The Boy in the Plastic Bubble》

데이비드 생전이던 1976년, 그의 이야기는 TV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The Boy in the Plastic Bubble》(한국어 제목: 플라스틱 거품 속의 소년)은 면역체계 결핍으로 격리실에서 자란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베더와 비슷한 병을 앓았던 테드 드비타(Ted DeVita)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토드 러비치’는 부모의 보호 속에 거품 안에서 자라다가, 이웃 소녀와 사랑에 빠지며 바깥세상에 대한 갈망을 키웁니다. 결국 그는 사랑을 위해 거품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낭만적인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실제 ‘버블 보이’에게도 해피엔딩이 오길 바라는 염원을 반영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데이비드는 그러한 극적인 낭만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영화 주인공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거품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의료적 필요로 인해 바깥공기를 마시게 되었고, 십 대 로맨스를 꿈꾸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의 일부 모티브만 차용하였을 뿐, 전개나 결말에서는 실제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블 속의 삶”을 대중문화에 처음으로 각인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1986년 영화 《The Crystal Heart》

《The Crystal Heart》(1986)은 “버블 보이” 모티브를 좀 더 판타지적인 러브스토리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희귀 질환으로 인해 22년간 유리방에서만 살아온 청년으로, 우연히 만난 여성 록 가수와 교류하며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음악을 통해 교감하며, 크리스토퍼는 결국 생명을 걸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이 영화는 《The Boy in the Plastic Bubble》보다 더욱 극적인 감정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데이비드의 실화와는 설정부터 큰 차이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성인 남성으로 그려졌으며, 이야기는 철저히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전개됩니다. 현실의 데이비드는 사랑을 꿈꾸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생을 마쳤고, 자발적 탈출보다는 생명을 위한 의료적 결정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또한 “버블 속 주인공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랑을 이루려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현실의 데이비드가 품었을 법한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간접적으로 환기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좋은 소재의 영화인데, 이렇게 영화를 못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영화입니다. 악평도 많았습니다.

2017년 영화 《Everything, Everything》

최근에도 “버블 보이/걸” 모티브는 변주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7년 개봉한 《Everything, Everything》은 SCID를 앓는 18세 소녀 매디를 주인공으로 한 청소년 로맨스 영화입니다. 매디는 태어나서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지만, 이웃 소년과 사랑에 빠지며 마침내 모험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녀는 따뜻한 해변에서 생애 첫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부 반전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매디는 실제로 면역결핍증을 앓고 있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과보호로 인해 거짓된 병을 믿고 자란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SCID 자체를 허구적 장치로 사용한 것이며, 실제 환자들의 고통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또한 ‘버블 속 소녀’가 바깥세상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데이비드를 비롯한 실제 격리 환아들이 품었을 희망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억되는 이야기

데이비드 베더, 우리가 흔히 부르는 “플라스틱 버블 안의 소년”의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그의 삶이 남긴 질문과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학과 윤리의 경계, 삶의 질과 생명의 존엄성 등에 대한 논의 속에서 데이비드의 사례는 자주 회자되고 있으며, 그의 유산 덕분에 많은 SCID 환아들이 더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별칭인 “버블 보이”는 과학의 도전과 한계를 상징함과 동시에 인간의 희망과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플라스틱 거품 너머에서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작은 소년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와 영화, 허구와 실화를 넘나들며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짧았지만 깊은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삶은 비록 유리벽 너머에 놓여 있을지라도, 사랑과 희망은 그 어떤 장벽도 뚫고 우리의 마음에 닿는다.”

 

TMI

데이비드 베더(David Vetter)의 경우, 병명은  X-연관 중증복합면역결핍증(X-linked SCID)이며, 이는 IL2RG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 유전자는 인터류킨-2 수용체 감마 사슬(IL-2 receptor γ chain, 또는 common γ chain, γc)을 암호화합니다.

 

이 감마 사슬은 단지 IL-2뿐 아니라, IL-4, IL-7, IL-9, IL-15, IL-21 등의 여러 인터류킨 수용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핵심 부위입니다. 따라서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T세포와 NK세포 발달에 치명적 손상이 생기고, B세포도 기능이 불완전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 데이비드는 IL2RG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 X-linked SCID 환자였습니다.
  • 이로 인해 T세포(-), NK세포(-), B세포(+)지만 기능 저하 형태의 면역결핍 상태를 보였습니다.
  • 이는 SCID 중 가장 흔한 형태이며, 여성은 보통 보인자로 남성에서 발현됩니다.

생에 마지막에서 죽은 이유는, 바이러스는 보통 T세포가 대응하는데, T세포가 작용하지 않아서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를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고 보통 사람은 평생에 한 번 이 바이러스에 감염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면역이 없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정말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