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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면역

로베르트 코흐와 탄저균의 발견 이야기

by 면역이야기 2025. 7. 27.

생물학 테러에 사용되는 탄저균

탄저병은 생물테러의 대표적인 균입니다. 탄저균이 생물학 테러에 사용되는 이유는 여러가지 인데 그 중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강한 생존력과 포자 형성

탄저균은 포자(spore) 상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이 포자는 매우 열과 건조, 자외선, 소독제에도 잘 견딥니다. 실제로 수십 년간 토양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가 다시 감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포자는 공기 중으로 쉽게 부유할 수 있으며, 이를 흡입하면 치명적인 폐탄저를 유발합니다.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은 아주 강력한 내성을 가진 포자(spore)를 형성합니다. 이 포자는 일반적인 끓는 물(100℃)에서는 수 분 이상 가열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내열성이 강합니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살균 장비는 가장 강한 균의 포자조차 죽일 수 있어야 진정한 멸균 상태라고 인정됩니다. 이에 따라 오토클레이브는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설정됩니다:

  • 온도: 121℃
  • 압력: 15 psi (약 2기압)
  • 시간: 최소 15분 이상

이 조건은 탄저균 포자조차 완전히 사멸되는 것으로 입증된 최소 기준이며,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표준 멸균 조건이 되었습니다.

2. 소량으로도 높은 치사율

흡입형 탄저는 아주 소량의 포자(수십 개만 흡입해도)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80~90% 이상 사망률을 보이며, 치료를 받아도 중증일 경우 사망 가능성이 높습니다.

3. 감염 초기 증상이 비특이적

초기 증상은 감기나 독감처럼 보여 초동 대응이 어렵고, 진단 시기를 놓치면 급속히 전신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테러 상황에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할 경우 대규모 피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4. 분산 및 전달이 용이

탄저 포자는 가루 형태로 가공하기 쉽고, 편지봉투나 분무기 등을 이용해 손쉽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01년 미국에서는 탄저균이 든 편지가 우편으로 배달되면서 22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5. 대비가 어려운 심리적 충격

탄저균 테러는 단순한 감염 사건을 넘어서, 공포와 불안을 확산시켜 사회적 마비를 일으키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습니다. 이는 생물학 무기의 핵심 목표 중 하나입니다.

 

 

 

 

탄저균의 발견

로버트 코

 

1870년대 독일, 한 시골 의사였던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는 당시로서는 아주 흔했지만도, 치명적인 가축 전염병인 탄저병(anthrax)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탄저병은 농장을 황폐화시키고 사람까지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었지만, 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명확히 알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코흐는 이 질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대도시 연구자가 아니었고, 최신식 실험장비를 갖춘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작은 시골 마을 볼슈타인(Wollstein)에 있는 진료소의 구석방을 실험실 삼아, 현미경, 면도칼, 뜨거운 철판, 고무 튜브 등으로 만든 조잡한 장비를 이용해 탄저병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병든 소의 혈액을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혈액 속에서 실처럼 길게 생긴 막대 모양의 생명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균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 균이 진짜 병의 원인인지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코흐가 탄저균을 볼 때 사용한 현미경
코흐가 탄저균을 사진 찍은 현미경

 

 

 

탄저균의 배양에서 발전되어 태어난 페트리 디시

먼저 그는 탄저균을 밖에서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삶은 감자나 젤라틴을 이용해 균을 자라게 하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균이 스스로 고리 모양의 포자(spore)를 만들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 발견은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이었습니다. 포자의 존재는 탄저병이 오랜 시간 잠복해 있다가 다시 발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열쇠였습니다.

최초로 보고한 코흐의 탄저균 사

 

이 실험 과정에서 그는 균의 순수 배양과 관찰을 위해 유리 접시에 영양 배지를 붓고 배양하는 기법, 즉 오늘날의 페트리 디시(Petri dish)의 원형에 가까운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코흐가 사용한 유리 접시는 뚜껑이 없거나 접시 위에 유리판을 덮는 방식이었고, 이를 발전시켜 지금의 형태로 만든 인물이 바로 코흐의 제자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Julius Richard Petri)였습니다. 페트리는 1887년, 유리 접시에 뚜껑을 덮되 완전히 밀폐되지 않도록 살짝 덮는 방식의 둥근 접시를 고안하였고, 이로써 현재의 '페트리 디시'가 완성되었습니다. 공기가 통하면서도 오염을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구조는 일부러 틈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당대 밀폐 기술의 한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구조가 과학적으로 이상적인 형태였던 셈입니다.

 

코호의 3원칙 

하지만 코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배양한 균을 건강한 생쥐에게 주사하여 병이 옮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건강하던 생쥐가 얼마 지나지 않아 탄저병 증상을 보이며 죽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과학적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죽은 생쥐의 혈액 속에서도 동일한 균을 다시 발견함으로써, "같은 균이 병을 일으키고, 동일한 경로로 전염된다"는 이론을 실험적으로 완성해냈습니다.

이 실험은 나중에 "코흐의 3원칙"이라 불리게 되는 질병의 원인균 규명법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첫째, 환자에게서 특정한 미생물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둘째, 이 미생물을 순수하게 배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이 미생물을 건강한 동물에 주입했을 때 동일한 병이 발생해야 하며, 다시 그 미생물을 해당 동물에게서 분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이후 감염병 원인 규명의 황금률로 자리잡았습니다.

코흐의 발견은 과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탄저균이 최초로 인과관계가 증명된 세균이라는 점에서, 현대 세균학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업적으로 베를린 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었고, 이후 결핵균과 콜레라균까지 연이어 발견하며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TMI 탄저란, 뭔 뜻인가? 검은 괴사 가피,

한편, 여기서 말하는 '탄저(炭疽)'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숯(炭)처럼 검게 괴사하는 종기(疽)'를 뜻합니다. 실제로 피부 탄저는 피부 병변 중심에 검은색 괴사 가피(eschar)가 생기는데, 이 모습이 숯처럼 검게 보입니다. 그러나 일부 자료에서 말하는 ‘검은 고름’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고름은 액체 상태의 화농성 물질을 뜻하지만, 탄저의 병변은 고름보다는 마른 괴사 조직이 딱지처럼 붙은 것이므로, 검은 괴사 가피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당시 탄저병의 대표적인 임상 증상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결과로, 병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시골 의사의 호기심과 집념은 이렇게 세균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완전히 뒤바꿔놓았습니다. 탄저병으로 죽어가던 수많은 생명은 이제 원인을 알게 되었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출발점에, 작은 실험실과 현미경 하나로 시작된 로베르트 코흐의 탄저균 실험이 있었습니다.

 

 

실험결과 사진 출처 

https://doi.org/10.1016/j.ijid.2009.1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