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치료의 패러다임은 왜 100년간 바뀌지 않았는가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곤도 마코토 같은 사람들은 항암치료, 특히 수술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입니다. 과연 그 사람 말이 옳을까요? 곤도 마코토는 아래의 책으로 유명해졌지만, 최근에는 암의 역습이라는 책으로 인기몰이를 합니다. 과연 그가 맞을까요?
Youtube 에는 그 사람의 주장에 반대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영상도 찾아보면 많습니다. 뭐 다 찾기는 뭐해서 하나만 소개하죠.
일단 위 두 사람 중에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안타깝게도 곤도 마코토 입니다. 아래 의사는 자료를 말하고 싶으면 좀 더 치밀하게 자료를 말해야 하는데 표준치료법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저는 누구의 주장을 따를까요? 그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왜 말을 빙빙 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논쟁은 여러분을 잘 모르시고 사실 의사들도 잘 모르지만, 미국의 항암연구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던 한편의 논문과 관련되어 있고, 조금 과장하면 정말 미국 항암의학 분야가 망할뻔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1986년 발표된 베일러와 스미스의 유명한 논문 "암에 대한 진보?"라는 논문입니다.
Bailar JC, Smith EM. "Progress Against Cancer?" _N Engl J Med_. 1986.
이 논문이 미친 영향은 제가 살아오면서 몇몇 노벨상 수상건을 제외하면, 이렇게 일반인들이나, 학자들에게 무시되면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근치수술에 대해서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외과의학은 근대 과학과 함께 성장해왔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가 근치적 유방절제술(radical mastectomy)입니다.
이 수술은 한 세기 동안 유방암의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고,
그 중심에 윌리엄 스튜어트 홀스테드(William S. Halsted, 1852–1922)가 있었습니다.
존스홉킨스의 외과의사, '조금 더 많이 자르자'는 전략을 택하다
홀스테드는 미국 외과학을 체계화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무균 수술의 원칙을 익히고, 이를 미국에 도입했으며,
외과 수련 과정을 처음으로 제도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1894년, 그는 《Annals of Surgery》에 발표한 논문에서 근치적 유방절제술의 효과를 보고합니다.
이 수술은 다음 세 가지를 포함했습니다:
- 유방 전체 제거 (total mastectomy)
- 흉근(pectoralis major/minor) 전부 절제
- 겨드랑이 림프절 광범위 절제 (axillary lymph node dissection)
당시 의학계는 이 수술법을 크게 환영했고, 홀스테드식 수술은 20세기 중반까지 유방암 치료의 정석으로 자리 잡습니다. 유럽, 일본, 남미에서도 이 모델을 받아들였습니다.
일단 이 당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근치수술의 대표적인 사례로 홀스테드를 말하지만, 근치수술은 그가 창안한 것도 아니며, 당시 전해오는 수술법을 이용해서 암 치료에 극단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완벽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람이었습니다.
윌리엄 스튜어트 홀스테드, 그는 1852년 뉴욕에서 유복한 의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예일대학에 들어갔다가, 컬럼비아 의학대학원에 들어간 이유는 의사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이 없어서 의학대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가 얼마나 의학계가 엉터리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행한 사혈요법이나, 하제 사용등의 엉뚱한 치료법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하지만 이것은 좀 넘어가고, 홀스테드는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을 여행하면서 선진 의학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그때, 암수술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당시 1860년대에 런던 세인트 루크 병원에서 찰스 무어 라는 사람이 유방암의 국소 재발에 주목했습니다.그는 암수술을 하는데, 암수술이 일어난 후, 몇 개월 후에 재발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 어디서 제발했는가를 살펴봤더니, 암 수술한 부위의 가장자리에서 재발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암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발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가장자리까지 제거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가장자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암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무어의 주장이 나오고 홀스테드는 그렇다면 좀 더 완전히 제거하고 주변의 근육까지 제거하는 근치수술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암이 재발하자, 상당히 많은 유방조직을 절제했습니다. 그래서 이 수술을 받고 나면 신체의 심각한 손상이 일어났습니다.
대규모 유방절제술은 환자들의 외모를 영구적으로 손상시켰다. 대흉근을 잘라내면, 어깨가 안으로 굽어서 영구히 축 처짐으로써, 팔을 앞이나 옆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겨드랑이의 림프절을 제거하면 종종 림프의 흐름에 장애가 생겨서 림프액이 쌓임으로 써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팔이 부어오른다. 그는 이 증상에 " 수술 코끼리 피부병" 이라는 생생한 이름을 붙였다. 재발은 수술한 뒤에 몇 개월 때로는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일어나곤 했다. - 암 만병의 황제 81쪽
그러나 초기의 데이터는 '선택된' 환자군에서 나왔다
홀스테드가 보고한 생존률은 일부 환자에게서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환자군은 엄격하게 선별된 사례였으며, 이 수술을 받지 않은 환자와의 비교군이 없었습니다.
이게 사실은 복잡한 문제인데, 수술은 대조군 연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즉 수술을 한 것 처럼 행동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수술이나 몸안의 장기를 티 안나게 일부 제거하는 경우라면 가능하지만 근치 수술의 경우는 대조군이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성과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에 기반하지 않았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근거 수준이 매우 낮은 임상 관찰(case series)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술법은 곧 정신적 교리가 되었고, ‘조기 발견 → 광범위 절제 → 생존 연장’이라는 공식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홀스테드의 명성 자체가 그 증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이해의 부족과 '치료 = 제거'라는 전제
19세기 말, 암은 기본적으로 국소 질환(local disease)으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암을 치료한다는 것은 곧 눈에 보이는 병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암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 진단 시점에 이미 미세 전이(micrometastasis)가 존재할 수 있음
- 림프절 제거만으로 전이 방지를 보장할 수 없음
- 일부 암은 생물학적으로 ‘느리게 자라는 질환’일 수 있음
그럼에도 근치수술은 수십 년간 대안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은 심한 기능장애, 심리적 트라우마, 외형적 손상을 겪었지만,
생존율은 기대만큼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버나드 피셔의 도전과 "전신 질환" 가설
버나드 피셔는 외과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이러한 기존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실험실 연구와 초기 임상 데이터를 통해 유방암이 진단 초기 단계부터 혈류를 통해 전신으로 퍼질 수 있는 "전신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단순히 국소적으로 더 많은 조직을 제거하는 것이 전체적인 생존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미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퍼져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NSABP B-06 임상시험의 설계와 결과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피셔 박사와 NSABP(미국 국립외과보조치료계획)는 1976년부터 1985년까지 약 2,000명의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획기적인 NSABP B-06 임상시험을 설계했습니다. 환자들은 무작위로 세 그룹 중 하나에 배정되었습니다.
- 그룹 A: 근치적 유방절제술 (Modified Radical Mastectomy): 유방 전체와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 그룹 B: 단순 유방절제술(Total Mastectomy) + 방사선: 유방 전체를 제거하고, 남은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단순 유방절제술'은 근치적 유방절제술보다 근육 제거가 없는 덜 광범위한 수술을 의미합니다.)
- 그룹 C: 유방보존술(Lumpectomy) + 방사선: 암이 있는 유방 조직의 일부만 제거하고, 유방 전체에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방식입니다.
10년 이상의 추적 관찰 결과, 세 그룹 모두에서 생존율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즉, 유방을 더 많이 절제하든, 유방을 보존하든 환자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동일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된 것입니다.
연구의 의미와 유방암 치료의 패러다임 변화
NSABP B-06 연구 결과는 유방암 치료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근치적 수술 패러다임의 종식: "더 많이 잘라낼수록 좋다"는 할스테드 이론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종식시켰습니다. 이는 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지만, 과학적 증거는 명확했습니다.
- 유방 보존술의 표준화: 유방 보존술(부분 절제술 + 방사선 치료)이 많은 유방암 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는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 전신 치료의 중요성 부각: 유방암이 국소 질환이 아닌 전신 질환이라는 피셔의 가설을 뒷받침하며, 수술 외에 항암화학요법이나 호르몬 요법과 같은 전신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조 요법은 수술 후 남아있을 수 있는 미세 전이 암세포를 제거하여 재발을 막고 생존율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요약하자면, 버나드 피셔 박사와 NSABP B-06 연구는 유방암 치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환자 중심적이고 덜 침습적인 치료법으로의 전환을 이끈 매우 중요한 연구입니다.
근치수술은 왜 이토록 오래 지속되었는가?
- 초기에는 대체 치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외과 의사들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 의학 교육과 사회적 인식은 한 번 수립된 ‘정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수십 년간 수많은 여성들이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유일한 선택지’로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 즉 수술부위를 가능하면 넓게 제거한다는 것은 홀스테드의 유방암의 사례에서 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암수술에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베일러와 스미스의 논문이 한편 발표되고 이것으로 암 관련 분야는 정말로 난리가 납니다. 물론 최고 수준의 학자들 사이에서 일이긴 하지만요. 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 연구 논문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 논문을 전혀 읽지 않은 의사가 나와서 헛소리하는 동영상을 심심치 않게 봤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하겠습니다.
다만 곤도 마코도의 주장은 의외로 주류의학계, 특히 예방의학계의 주장을 그의 방식대로 좀 지나치게 말한 수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과학은 신념이 아닌, 반증을 통해 진보한다
홀스테드는 시대를 앞서간 외과의사였지만, 그가 만든 수술법은 과학적 검증 없이 정서적 믿음과 외과적 권위에 의해 확대 적용되었습니다. 솔찍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근치수술은 치료의 한 방법이었을 수 있으나, 그것은 결코 과학적 필연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암 치료는 많이 자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어떻게 할까요? 현대의학이 이러한 점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어느 정도 대책을 세웠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나중에 따로 종합해서 포스팅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 Halsted WS. "The Results of Radical Operations for the Cure of Carcinoma of the Breast." Annals of Surgery, 1894.
- Fisher B et al. "Twenty-Year Follow-Up of a Randomized Trial Comparing Total Mastectomy, Lumpectomy, and Lumpectomy plus Irradiation." NEJM, 2002.
- Mukherjee S. The Emperor of All Maladies. Scribner, 2010.
- Welch HG. Overdiagnosed: Making People Sick in the Pursuit of Health. Beacon Pr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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