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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면역

왜 혈우병환자는 에이즈에 걸렸나, 감염된 치료제

by 면역이야기 2025. 7. 18.

바이엘 산하의 커터사의 HIV 바이러스가 오염된 혈액응고 제품의 판매로 인하여 제3세계 혈우병환자가 HIV에 걸린 사건. 커터사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유사한 문제가 있었으나, 커터사가 문제가 심했다.

1980년대 HIV 혈액 오염 사건: 커터사의 비극과 일본의 상흔

1950년대 오염된 소아마비 백신으로 곤욕을 치룬 커터사는 1980년대 의약품의 역사적으로 최악의 사건의 하나를 일으킨 회사가 됩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제약회사 커터(Cutter Laboratories)가 제조한 혈액 제제가 HIV에 오염되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혈우병 환자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건은 현대 의료 역사에서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은 혈액 제제의 안전성 문제와 제약 산업의 윤리적 책임을 드러내며, 특히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글에서는 커터사의 HIV 혈액 오염 사건의 전개와 일본에서의 피해를 중심으로, 한국의 사례를 간략히 다룹니다.

사건의 배경: 혈액 제제와 HIV의 그림자

혈우병은 혈액 응고가 어려운 유전 질환으로, 환자들은 출혈을 막기 위해 응고인자 농축제(factor VIII, IX)를 투여받습니다. 현재는 유전자재조합 제품으로 동물세포배양을 통해서 만들어지지만, 과거에는 사람의 혈액을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혈액응고인자는 매우 변성되기 쉽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정제해야 하고 그 정제도가 높지 못해서 농축제라고 불렀습니다. 단백질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불활화가 쉽지 않아서 많은 회사에서 HIV가 유행하는 초기에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HIV가 혈액을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커터사는 바이엘(Bayer)의 자회사로, 혈우병 치료용 제제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HIV/AIDS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다수 기증자의 혈액을 혼합해 만든 제제는 단 한 명의 감염자 혈액만 포함되어도 전체가 오염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HIV 바이러스는 매우 불활화가 잘 되는 바이러스 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그러한 사항을 몰랐고, 약간의 오염으로 생산 batch 전부를 오염시킬 위험이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커터사를 포함한 제약 회사들이 이 위험을 알면서도 열처리(바이러스 불활화) 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오염된 제제를 판매했다는 점입니다.

사건 전개: 윤리적 실패와 비극의 확산

1982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혈우병 환자들 사이에서 AIDS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이는 혈액 제제의 오염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커터사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오염된 제품을 계속 판매했습니다. 특히, 미국 내에서 규제가 강화되자 오염 가능성이 있는 재고를 아시아, 유럽, 남미로 수출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1984~1985년, HIV 검사 기술이 도입되며 오염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지만, 이미 수많은 환자들이 감염된 후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000명 이상의 혈우병 환자가 HIV에 감염되었으며, 이 사건은 제약 산업의 규제와 혈액 관리 체계의 혁신을 촉발했습니다.

 

커터사 혈액제제로 인한 국가별 피해 정리

국가추정 감염자 수 (HIV)사망자 수 (추정)피해 특징 및 비고
미국 약 6,000명 이상 수백 명 이상 1982~85년 사이 팩터 VIII 사용 환자들 감염. 집단소송 후 합의.
일본 약 2,000명 이상 약 400명 이상 후생성 및 녹십자 형사기소. 정부 공식 사과 및 보상.
프랑스 약 1,200명 이상 약 300명 이상 보건장관 기소. 피해자 단체 조직적 대응.
스페인 약 1,000명 수백 명 유사한 오염 제품 사용. 정부 개입 미비로 비판.
이탈리아 약 800명 이상 미상 피해자 집단소송 제기. 2000년대까지 재판 지속.
아르헨티나 수백 명 이상 미상 1983~85년 제품 유입. 언론 주목은 제한적.
대만 약 100명 이상 일부 사망 커터사 제품 수입 확인. 소송 및 보도 제한적.
말레이시아 수십 명 추정 미상 공식 보고는 거의 없으나 감염 가능성 제기.
대한민국 수십 명 추정 일부 사망 1980년대 커터사 제품 유통 확인. 상세 자료 부족.
 

 

일본: 비극의 중심지

일본은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로, 약 1,800~2,000명의 혈우병 환자가 HIV에 감염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 혈우병 환자의 약 40%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피해 규모와 사회적 충격

일본에서는 커터사와 백스터, 알파 테라퓨틱스 등 미국 제약사에서 수입한 제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제약사 녹십자(Green Cross)는 커터사의 오염된 제제를 수입해 유통하며, 자체 제조 제제마저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감염된 환자들 중 다수가 AIDS로 사망하며, 일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고, 생존자들은 HIV 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싸워야 했습니다.

일본 녹십자 스캔들

녹십자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오염된 제제를 판매한 혐의로 강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내부 문서에 따르면, 녹십자는 1983년 이미 HIV 전파 위험을 인지했지만, 재고 소진과 이익을 위해 판매를 계속했습니다. 이는 일본 내에서 제약 산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법적 투쟁과 변화

1989년,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제약사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은 일본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1996년 정부는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녹십자 등 관련 기업들도 보상을 제공했으며, 이 사건은 일본의 혈액 관리 체계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열처리 제제의 의무화, 기증자 선별 강화, HIV 검사 도입 등으로 혈액 제제의 안전성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결론: 교훈과 현재

커터사의 HIV 혈액 오염 사건은 제약 산업의 윤리적 책임과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일깨운 비극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이 사회적 개혁과 피해자 보상으로 이어졌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이 사건은 혈액 제제의 안전성 강화를 촉발하며, 열처리 기술과 HIV 검사 의무화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의료 산업의 투명성과 안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특히 일본의 사례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일본 녹십자는 한가지 더 안 좋은 소문이 있습니다. 바로 설립자가 731부대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일본 녹십자, 그리고 731부대와의 연결 고리?

– 전범 의사들의 전후 행로에 대하여

일본의 혈액제제 전문 제약사 일본 녹십자(Green Cross)일본군의 악명 높은 생체실험 부대인 731부대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https://news.tf.co.kr/read/economy/1508138.htm

전범에서 기업인으로

녹십자는 1950년 오사카에서 설립된 제약회사로, 혈우병 치료제 등 혈액 유래 의약품을 개발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립자 중 한 명인 사카키바라 요시유키(榊原吉佑)가 과거 731부대 또는 그 주변 방역 부대에서 활동한 군의관이었다는 정황이 일본 언론과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731부대는 만주 하얼빈에서 중국인과 러시아인 포로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과 세균전을 수행한 일본군의 비밀부대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구성원 다수는 미국과의 정보 거래를 통해 전범 기소를 피하고 의료계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31 출신이 제약계를 장악했다"는 비판

1990년대 이후, 일본의 탐사 저널리즘 매체들은 731부대 출신 인물들이 전후 일본 제약업계와 의학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해왔습니다.
녹십자 창립자 외에도, 일부 731 인맥이 후생성과 의료계 요직을 차지했다는 주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학술서에서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731부대의 유산이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산업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HIV 스캔들, 그리고 회사의 종말

그러던 중 1980년대 중반, 녹십자는 HIV에 오염된 혈우병 치료제를 일본 전국에 공급한 책임 기업으로 지목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수천 명의 혈우병 환자가 감염되었고, 수백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공식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였으며, 후생성 간부와 녹십자 고위 관계자들이 형사 기소되어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사회적 신뢰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 녹십자(Green Cross)는 결국 1998년 다케다약품공업(Takeda) 계열사였던 미쯔비시화학과 통합되며 법인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그 이름은 일본 제약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