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믿음, 그리고 티메로살 논쟁의 진실
2000년대 초 미국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들의 부모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아이가 백신 접종 직후 달라졌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처음엔 혼자였지만, 곧 온라인 포럼과 이메일을 통해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어떤 공통 원인에 의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통점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백신 속에 포함된 방부제 ‘티메로살(Thimerosal)’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머큐리 맘스(Mercury Moms)”라 불렀습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모인 이 엄마들은 과학보다 경험과 직감을 더 신뢰했고, 그 믿음은 곧 조직화되었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청문회에 나가며,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습니다. 언론은 그들의 눈물과 분노에 주목했고, 감정의 강도는 과학적 근거의 빈약함을 압도했습니다.
논란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와 식품의약국(FDA)도 결국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9년, 소아 감염 전문가들은 “직접적 위험은 없지만, 국민 신뢰를 위해 티메로살을 제거하자”라고 제안하였고, 2001년부터 미국의 모든 어린이 백신에서 티메로살은 사라졌습니다. 이 결정은 과학적 확신보다는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따른 ‘정치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예방적 제거’ 조치는 오히려 백신 불신을 키웠습니다. 부모들은 “위험하지 않았다면 왜 뺐겠는가?”라고 되묻기 시작했습니다. 티메로살 제거는 오히려 과학적 안정성을 부정하는 메시지로 해석되었고, 머큐리 맘스의 운동은 자폐증의 원인을 백신에서 찾으려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으로 번져갔습니다.
그렇다면 티메로살은 정말 위험한 물질일까요?
최근 미국 보건복지부는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에서 다시 한 번 티메로살 관련 의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잠잠했던 수은 논란이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과도한 불안은 경계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티메로살은 1930년대부터 다회용 백신 병에 세균이나 곰팡이의 오염을 막기 위해 쓰여 온 방부제입니다. 문제는 그 안에 포함된 ‘에틸수은’이라는 성분입니다. 하지만 ‘수은’이라는 단어가 갖는 공포는, 실제 과학적 성질과는 매우 다릅니다. 독성학자들은 “수은은 형태에 따라 독성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수은은 메틸수은입니다. 이는 참치나 심해어 등에 축적되며, 체내 반감기가 50~80일에 달해 장기적으로 신경계에 축적될 수 있습니다. 반면 티메로살에 포함된 에틸수은은 조직에 거의 축적되지 않으며, 반감기가 약 1주일로 빠르게 체외 배출됩니다. 미국 클리블랜드대학병원의 독성학자 라이언 마리노(Ryan Marino) 박사는 “티메로살로 급성 중독을 일으키려면 수백~수천 회를 한 번에 맞아야 할 것”이라며 실질적 위험성을 부정합니다. 사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중금속은 몸속에서 축적만 되지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4년, 미국의학한림원은 티메로살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조사한 역학 연구 10여 편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광범위한 데이터와 수백만 명의 백신 접종 기록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판단이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티메로살이 포함된 백신은 성인 독감 백신의 약 4%에 불과하며, 대부분 1회용 프리필드 형태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일부 백신에는 티메로살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비용과 접근성에 있습니다. 독감 백신은 매년 대량으로 생산되어야 하고, 다회용 병은 생산 및 보관 비용이 낮아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이나 취약계층에게 유용합니다.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으면 다회용 병은 불가능하며, 아직까지 티메로살보다 더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체 방부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보건대학의 닐 핼시(Dr. Neal A. Halsey) 교수는 “티메로살은 오랫동안 연구된 안전한 물질이며, 어린이 백신에서 제거한 결정은 예방 차원이었을 뿐 위험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닐 핼시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소속은 아니며, 존스 홉킨스 대학 산하의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 대학 소속입니다. 그는 이 대학은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 전문 대학원이며, 백신정책, 글로벌 보건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 대학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결국 ‘백신 속 수은’이라는 공포는 과학보다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며, 많은 경우 공감이 진실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머큐리 맘스는 자식을 걱정하는 사랑에서 시작된 움직임이지만, 그 믿음이 과학을 밀어내고 공포를 확산시키는 데 사용되었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같은 길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더욱 감정이 아니라 검증된 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백신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백신만큼 많은 생명을 구한 기술도 없습니다. 티메로살 논쟁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그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국내 일부 기사가 있는데 그 기사는 아마도 사이언틱 아메리칸의 기사를 참고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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