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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렁의 시대: 우리가 잊은 소아마비의 공포

by 면역이야기 2025. 7. 16.

한때, 여름이 오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수영장에 보내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다리를 쓰지 못하거나, 숨을 쉬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감염병이 아니라, 한 세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질병 소아마비(Polio) 때문이었습니다. 백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소아마비는 전염병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난이었습니다.

소아마비가 무섭다는 것은 흔히 다리를 저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이언 렁(iron lung) 장치를 보면 처음에는 영화의 한 장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아마비란 무엇인가?

소아마비는 폴리오바이러스(poliovirus)가 신경계를 침범하여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감염자의 대부분은 가벼운 증상만 경험하거나 무증상이지만, 약 1%에서는 척수의 운동신경이 손상되어 마비(paralysis)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이 마비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 번 손상된 신경은 회복되지 않으며, 그 결과는 평생 지속되는 장애입니다.

이 질병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소아마비’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많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보조기, 목발,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야 했습니다.

이 병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얼마나 환자가 발생할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료를 보면 1910년대 부터 환자수가 일정하지 않고 매우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당시 공포였습니다.

소아마비가 특이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호흡근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언 렁(Iron Lung): 살아 있지만, 숨 쉴 수 없는 아이들

팔레스타인 한 병원에서의 아이언 렁

 

아이언 렁(Iron Lung): 살아 있지만, 숨 쉴 수 없는 아이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호흡근까지 마비된 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숨을 쉴 수 없게 되었고,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인공적인 호흡 보조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 장치가 바로 ‘아이언 렁(Iron Lung)’, 즉 철제 폐입니다.

아이언 렁은 어떤 장치인가?

  • 1928년 개발된 이 장치는 진공압을 이용해 흉곽을 확장·수축시켜 호흡을 유도합니다.
  • 환자의 온몸을 금속 원통 안에 집어넣고, 머리만 바깥으로 나오게 한 상태에서 작동합니다.
  • 내부의 공기 압력을 조절하여 흉곽이 움직이게 하고, 이를 통해 기계적으로 숨을 쉬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아이언 렁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 숨을 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생명을 이어주는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 평균 몇 주~몇 달,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이 장치에 갇혀 살아야 했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 가장 유명한 환자 중 한 명인 Paul Alexander는 1952년 이후 지금까지도 아이언 렁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마지막 아이언 렁 생존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부모에게는 아이의 얼굴만 보이며 돌봐야 하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고, 사회적으로는 공포의 시각적 상징이었습니다.

 

 

 

정말 한 시대의 사건을 상징하는 폴 알렉산더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도대체 그런 장치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었는지 참 경이롭습니다. 

 


사회 전체가 마비되었다

  • 1916년 뉴욕 대유행: 2천 명 이상 사망, 도시 봉쇄, 아이들의 외출 금지
  • 1952년 미국: 57,000명 이상 발병, 약 3천 명 사망, 수만 명이 마비 상태로 생존
  • 각 도시는 여름마다 소아마비 대유행에 대비해 학교, 수영장, 공공시설을 폐쇄했습니다. 이를 ‘폴리오 시즌(polio season)’이라고 불렀습니다.

소아마비는 단지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공황을 불러일으킨 존재였습니다.
감염 경로는 불확실했고, 치료법은 없었으며, 누구나 ‘내 아이일 수도 있다’는 공포에 빠졌습니다.

 

 

아이언 렁에 들어 있는 환자들. 장소: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에 위치한 랜초 로스 아미고스 국립 재활 센터의 강당. 이 사진은 1953년에 촬영된 것으로, 마치 오브 다임스(March of Dimes) 재단이 제작한 정보 영화의 일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대통령의 이름은 몰라도 백신을 연구하는 소크 박사의 이름은 알았다고 할 정도 소아마비는 전국적인 위협이었습니다. 그림 출처 : http://www.polioassociation.org/pictures.html

 

 

 


백신의 등장: 공포를 멈춘 기적

이 절망의 시대를 끝낸 것이 바로 1954년 조너스 솔크(Jonas Salk)가 개발한 사백신(IPV)이었습니다.
1955년,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발표와 함께 백신이 보급되자,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은 교회에서 종을 울리고, 거리에서 춤을 추며 이 기적을 맞이했습니다.

 

단 몇 년 만에 소아마비 발생률은 90% 이상 급감했으며, 이어 1960년대, 앨버트 사빈(Albert Sabin)이 개발한 경구용 생백신(OPV)이 세계적으로 보급되며, 소아마비는 점점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커터 사건: 백신 불신의 첫 그림자

그러나 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백신 보급 초기, Cutter Laboratories에서 생산한 백신 일부에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포함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백신을 맞은 아이들 중 일부가 실제로 소아마비에 걸리게 되었고, ‘커터 사건(Cutter Incident)’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백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낳습니다. 이 사건의 영향이 너무 커서 많은 미국인들은 백신에 대해서 불신하는 경향이 있고, 그 경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백신 안전성 관리 체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정부는 보다 엄격한 품질 규제와 보상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커터 사건은 백신이 더욱 안전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