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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식단에 대한 비판적 고찰: 과학인가, 신화인가

by 면역이야기 2025. 8. 15.

구석기 식단, 막상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이렇게 다양한 식단을 섭취하지는 않았다.

1. 서론: 구석기 식단 열풍은 어디서 왔는가?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구석기 식단(Paleo diet)’이 건강한 식생활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식단은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전, 즉 구석기 시절에 섭취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식단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육류, 생선, 과일, 채소, 견과류 등을 중심으로 하며, 곡물, 유제품, 가공식품은 배제합니다. 그 전제는 명확합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구석기 시대의 식단에 최적화되어 있고, 현대 질병의 상당수는 '현대식 식생활'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입니다.

월터 보엑틀린 (1975년 사망), 그는 구석기 식단 창시자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구석기 식단 개념의 기원은 1975년, 미국의 소화기내과 의사인 월터 보엑틀린(Walter L. Voegtlin)이 출간한 『The Stone Age Diet』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인류의 조상들이 주로 육식을 했으며, 인간은 진화적으로 육식 위주의 식단에 적응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엑틀린은 인간의 소화기관이 초식동물보다 육식동물에 가깝다고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 학계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이후 진화영양학(evolutionary nutrition)이라는 흐름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렌 코데인, 팔레오 다이어트의 저자이기도 하며, Paleo Diet의 상표권자이다.

현대적인 구석기 식단의 대중화에는 로렌 코데인(Loren Cordain)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콜로라도 주립대학교의 운동생리학자로, 2002년 『The Paleo Diet』를 출간하여 팔레오 식단을 과학적으로 정리하고 대중적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코데인은 선사시대 인간의 식단을 분석한 고고학 자료와 영양 데이터를 결합하여, 고단백·저탄수화물·비가공식품 중심의 식단을 권장했습니다. 그는 농경 이후 도입된 식품들—특히 곡물, 유제품, 정제당, 가공유지 등—을 인간의 유전자에 부적합한 음식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일부 임상 결과와 결합되면서, 체중 감량, 인슐린 저항성 개선, 만성 염증 완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산시켰습니다. 동시에 ‘자연으로의 회귀’, ‘문명 이전의 건강한 몸’이라는 문화적 이미지와 맞물리며, 구석기 식단은 단순한 영양 전략을 넘어 하나의 건강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구석기 다이어트는 국내에서도 2012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진화생물학, 고고학, 영양학, 그리고 문화사회학의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비판들을 실제 학술 연구자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소개하고, 보다 균형 잡힌 식생활 인식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2. 진화생물학적 비판: 인간은 멈추지 않고 진화해왔다

진화생물학자 마를렌 주크(Marlene Zuk)는 『Paleofantasy: What Evolution Really Tells Us About Sex, Diet, and How We Live』(2013)에서, 구석기 식단에 대한 비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그녀는 인간이 농업 이후에도 계속해서 진화해왔으며, “농경 이전의 상태가 인류의 생물학적 이상형”이라는 가정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마를렌 주크의 저

이 책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당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인 ‘락타아제 지속성(lactase persistence)’은 일부 인구집단에서 농업 이후에 발달한 대표적 유전형질입니다. 또 다른 예로, 녹말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amylase) 유전자 복제 수는 식생활에 따라 집단 간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인간 유전체가 식단 변화에 맞추어 비교적 빠르게 적응해왔음을 보여주는 진화적 증거입니다. 따라서 “농업 이전 식단이 유전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주장은 진화론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3. 고고학적 반론: ‘단일한 구석기 식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구석기 식단은 마치 전 인류가 동일한 방식으로 식사했던 것처럼 제시되지만, 고고학자 크리스티나 워리너(Christina Warinner)는 이에 대해 뚜렷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녀는 TEDx 강연 『Debunking the Paleo Diet』(2015)에서, 고대 인류의 식단은 거주 지역과 기후, 계절적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했으며, 단일한 ‘구석기 식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북극 지방의 인류는 해양 포유류에 의존했고, 열대 지역의 집단은 과일과 뿌리 식물을 주요 식재료로 삼았으며, 사냥보다 채집이 중심이었던 문화도 다수 존재했습니다. 현대 팔레오 식단이 전제하는 ‘표준 구석기 식단’은 실제 인류학적 증거와 맞지 않으며, 이는 고대 식생활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아래는 허만 폰처의 하드자 족의 1년간 식단변화입니다. 철 마다 먹는 것이 다르며, 먹는 양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칼로리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새로 그림, 자료 출처 : https://doi.org/10.1146/annurev-nutr-111120-105520


4. 문화사회학적 해석: ‘자연’은 건강의 상징이 되었는가

구석기 식단이 단지 과학적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문화적 욕망과 불안에서 형성된 하나의 서사라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In Defense of Food』에서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현대 식품 산업이 ‘영양소’라는 추상 개념에 집착함으로써 식품의 본질과 관계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하며, 자연 그대로의 음식에 대한 향수가 소비자의 정체성과 윤리 의식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비판합니다.

 

구석기 식단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문명화되지 않은 순수성’이라는 상징을 통해, 단순한 식사 방식이 아니라 ‘도덕적 식습관’, ‘진정한 건강’을 소비하는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기능합니다. 이는 특히 자기관리, 웰니스, 미니멀리즘, 해독(detox)과 같은 담론과 맞물려 작동하며, 과학보다는 정체성과 윤리적 위신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집니다.


4.5. 구석기 식단과 다른 식단 비교

구석기 식단은 종종 현대의 다른 식단들과 비교되며 각기 다른 건강 효과와 이념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표는 구석기 식단과 대표적인 몇 가지 식단의 주요 특징을 비교한 것입니다.

 

 

구분 구석기 식단 (Paleo) 지중해 식단 (Mediterranean) 채식 식단 (Vegetarian)
주요 식품 육류, 생선, 채소, 과일, 견과류 올리브유, 생선, 곡물, 채소, 와인 채소, 과일, 곡물, 콩류, 유제품(선택적)
제한 식품 곡물, 유제품, 가공식품, 설탕 가공식품, 포화지방 육류 및 어류 (엄격도에 따라 다름)
과학적 근거 진화적 가정 기반, 일부 임상결과 존재 다수의 임상 및 역학연구에 의해 건강 효과 입증 심혈관 및 대사질환 예방 효과 있음
영양 균형 고단백, 고지방, 저탄수화물 중탄수화물, 고섬유, 지질 균형 고탄수화물, 고섬유, 일부 영양소 결핍 가능성
문화적 맥락 '자연으로의 회귀', 순수성 강조 전통 식문화 기반, 식사의 사회성 중시 동물권, 환경윤리 등과 결합되는 경우 많음

5. 의학적·영양학적 우려

구석기 식단은 단기적으로 체중 감량이나 혈당 조절 등의 긍정적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건강에 대한 효과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제기합니다.

  1. 칼슘 부족: 유제품을 배제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골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 포화지방 섭취 증가: 육류 중심 식단은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3. 식이섬유 불균형: 곡물 제거로 인해 일부 식이섬유 섭취가 부족해질 수 있으며, 이는 장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4. 지속 가능성 문제: 대규모 육류 소비는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전 지구적 식량 체계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구석기 식단은 보편적 식생활 전략이라기보다는, 특정 계층의 선택적 실천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6. 결론: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구석기 식단은 단지 한 가지 식사법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건강을 향한 열망이자, 자연에 대한 이상화이며, 현대 식품 환경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러나 과거로의 회귀가 과학적 해결책이라는 주장은 검토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진화했고, 문화도 진화했습니다. 고정된 이상형 대신, 각자의 환경과 건강 상태에 따라 유연하고 증거 기반의 식생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고문헌

  1. Zuk, M. (2013). Paleofantasy: What Evolution Really Tells Us About Sex, Diet, and How We Live. W.W. Norton & Company.
  2. Warinner, C. (2015). Debunking the Paleo Diet. TEDxOU.
  3. Pollan, M. (2008). In Defense of Food: An Eater’s Manifesto. Penguin Books.
  4. Manheimer, E. et al. (2015). Paleolithic nutrition for metabolic syndrome: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102(4), 922–932.
  5. Pontzer, Herman, and Brian M. Wood. "Effects of evolution, ecology, and economy on human diet: insights from hunter-gatherers and other small-scale societies." Annual Review of Nutrition 41.1 (2021): 363-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