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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역기반 건강설계
이기적인 면역

이기적인 면역이란 무엇인가?

by 면역이야기 2025. 9. 1.

 

에너지 사용 우선순위는 뇌와 면역이며, 가장 우선순위가 낮은 것은 근육이다.

우선 "이기적인 뇌"란 무엇인가

‘이기적인 뇌(Selfish Brain)’ 가설은 우리의 뇌가 생존을 위해 언제나 자신에게 당(포도당)과 산소를 최우선 배분하도록 온몸의 대사를 통제한다는 관점입니다. 뇌는 체중의 2% 남짓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끌어다 씁니다. 혈당이 떨어질 조짐만 보여도 교감신경,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아드레날린), 심지어 간(肝)의 글리코젠 분해까지 동원해 “포도당을 나에게!”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인슐린 저항성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뇌를 위한 당(糖) 전용 차선입니다. 말초 조직의 문을 잠가 포도당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뇌로 향하는 혈당을 보전하려는 방어적 전략이라는 뜻입니다.


이기적인 면역의 탄생

면역계도 필요할 때는 뇌 못지않게 이기적입니다. 외부 침입자나 조직 손상을 감지하는 순간, 면역세포들은 대사 스위치를 ‘면역 우선 모드’로 전환시킵니다.

  1. 연료 독점
    • 감염 초기에 나타나는 식욕 부진, 근육 단백질 분해, 지방 동원은 모두 면역세포에게 아미노산·지방산·포도당을 집중 공급하기 위한 생리학적 선택입니다.
    • 염증 매개체 IL-6, TNF-α는 간에 급성을 알리고, 철·아연 같은 미량금속을 혈액에서 강제로 빼앗아 가두어 둡니다. 병원체는 배고프고, 면역세포는 넉넉해지는 구조입니다.
  2. 대사 재편성
    • 대식세포·T세포는 활성화와 동시에 해당계(Warburg 효과) 의존성으로 바뀝니다. 산소가 충분해도 미토콘드리아 대신 해당계를 고집하며, 빠른 ATP 생산과 대사 중간물을 무기로 삼습니다.
    • 반대로 치유 단계(M2 대식세포·조절 T세포)로 넘어가면 β-산화와 산화적 인산화로 돌아가 장기전을 대비합니다.
  3. 행동 수정
    • 열(發熱), 피로감, 무력감은 모두 에너지를 외부 활동보다 면역 작전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생존 프로그램입니다.

이기적 면역이 남기는 그림자

단기간의 ‘면역 전시 경제’는 이롭습니다. 문제는 전시가 끝나지 않을 때입니다. 만성염증, 대사성 내독소증, 비만·제2형 당뇨, 암성 악액질(cancer cachexia) 등은 면역계가 전시 모드를 해제하지 못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만성 저등급 염증: 내장지방·장내 독소(LPS) 자극이 지속되면, 면역계는 낮은 불꽃을 끄지 못한 채 자원을 조금씩 태웁니다. 인슐린 저항성이 심화되고, 간이 지속적으로 당 신생을 수행해 혈당이 오릅니다.
  • 근육 소모: 염증성 사이토카인은 근육 단백질을 분해해 글루타민·알라닌을 확보합니다. 이는 면역세포와 간이 급성단백질을 만드는 데 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근력 저하와 대사 유연성 상실을 초래합니다.
  • 철 결핍·빈혈: 철을 잠가버리는 Hepcidin-IL-6 경로는 세균 증식을 막지만, host에게는 빈혈·피로를 남깁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1. 염증의 스위치를 보는 눈
    • 고열·급성통증만이 염증의 전부가 아닙니다. 미묘한 피로, 공복 혈당 상승, 허기 억제도 ‘이기적 면역’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면역 대사 조율
    • 영양·수면·운동·스트레스 관리는 뇌뿐만 아니라 면역계의 이기심을 진정시키는 생활 전략입니다.
    • 특정 식이섬유·폴리페놀·헤미셀란 같은 면역 완충(immune buffering) 소재는 과도한 면역 대사 재편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3. 치료 목표 재설정
    • 만성 질환에서 완전 억제(suppression)보다는 면역-대사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이 바람직합니다. 염증을 지나치게 눌러 면역 마비를 만들거나, 반대로 끝없는 전시 상태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맺음말

이기적인 뇌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당분을 독점하듯, 면역계도 필요할 때는 냉정하게 자원과 행동을 자기편으로 끌어옵니다. 문제는 전쟁이 너무 길어질 때입니다. ‘이기적인 면역’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염증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뇌-면역-대사를 잇는 거대한 에너지 경제를 읽어내는 일입니다. 건강 관리는 결국, 이기심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균형과 협상을 이루어 주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1. Peters, A. The Selfish Brain. Springer, 2004.
  2. Hotamisligil, G. S. “Foundations of Immunometabolism.” Cell 2025;184:1469–1486.
  3. Medzhitov, R. “Origin and physiological roles of inflammation.” Nature 2008;454:428–435.
  4. Tannahill, G. M. et al. “Succinate is an inflammatory signal that induces IL-1β via HIF-1α.” Nature 2013;496:238–242.
  5. Thaler, J. P., Schwartz, M. W. “Inflammation and obesity pathogenesis.” Diabetes 2021;70:2206–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