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오토파지를 유도해 노화를 늦춘다’는 이유로 스퍼미딘(Spermidine)이라는 이름의 영양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인지기능 개선’, ‘세포 청소’, ‘수명 연장’ 같은 표현이 상품 광고에 등장하고, 국내에서도 ‘노화 방지에 좋은 신소재’로 포장되어 유통되고 있죠. 하지만, 과연 우리가 지금 먹는 스퍼미딘 제품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시판되는 저용량 스퍼미딘 보충제는 항노화 효과를 기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용량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마우스에선 효과가 확실했다
스퍼미딘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6년 Nature Medicine에 실린 한 연구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마우스에게 평생 스퍼미딘을 물에 타서 먹였고, 놀랍게도 수명이 약 10% 연장되었으며 심혈관 기능, 오토파지 활성, 염증 억제까지 관찰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투여량입니다. 마우스에게는 대략 체중 1kg당 8~9 mg/kg/day 수준의 고용량을 매일 지속적으로 먹였습니다. 그 결과가 명확했던 겁니다.
이상하게 논문에는 정확한 투여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0.3mM 농도가 되게 물에 타서 먹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우스가 하루 5mL 정도 섭취한다고 가정해서 계산된 양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1mg만?
현재 시판 중인 스퍼미딘 보충제들은 대부분 1~6mg/day 수준에 그칩니다. 마우스에 비하면 100분의 1 수준이지요. 이 정도로는 뇌, 간, 근육 등의 조직에 충분한 농도로 도달하기 어렵고, 오토파지 유도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넉넉하게 생각해서 스퍼미딘을 4mg/day 섭취한다고 해도, 마우스의 섭취량인 8mg/kg/day의 경우 사람에게 환산하면 60kg 몸무게라면, 480mg/kg/day 의 1/120 입니다.
왜 이렇게 낮은 용량일까요?
- 건강기능식품 규제: 식이에서 얻을 수 있는 양 수준만 허용되기 때문에.
- 독성 우려: 스퍼미딘은 세포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암과의 관련성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음.
- 기술적 한계: 흡수율이 낮고, 대부분 체내에서 다른 물질로 전환됨.
즉, 효과보다 안전과 규제를 고려한 ‘보수적 용량’이 현재의 현실입니다.
임상시험에서도 ‘큰 변화 없음’
실제로 진행된 사람 대상 임상시험들을 살펴보면,
- 인지기능 향상은 뚜렷하지 않고,
- 염증 지표도 소폭 감소하거나 변화 없음,
- 오토파지 활성은 측정 불가 또는 미검출입니다.
그나마 의미 있는 신호가 있었던 연구들도 모두 소수 대상, 단기간, 저용량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낮습니다.
'마우스와 작용 부위가 동일하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를 드러낸다
과학자들은 스퍼미딘이 작용하는 경로가 마우스와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웁니다. 맞습니다. 오토파지를 유도하는 EP300, eIF5A, SIRT1 같은 단백질은 사람에서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마우스에서 효과를 본 용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사람도 충분히 먹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즉, 경로는 같은데 용량이 100배 부족하다는 것, 바로 그 점이 현재 스퍼미딘 영양제의 치명적 한계입니다.
(일부 약학을 배운 분은 마우스 섭취량을 kg 몸무게로 환산한 값이 아니라 그것의 1/12을 섭취하는 것이 맞다고 하실 것 같은데, 사실 그 계산법은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정해도 4mg 제품을 섭취시 적절한 섭취량의 1/10 정도 섭취하는 것입니다.)
결론: 스퍼미딘은 맞는데, 그 양이 너무 적다.
스퍼미딘 자체는 분명 흥미로운 분자입니다. 오토파지를 유도하고, 노화 지표를 개선하며, 마우스 수명을 연장시켰다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먹는 1mg짜리 캡슐이 그 효과를 재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답은: 아직 아니다.
현재의 스퍼미딘 보충제는 실질적인 항노화 효과를 내기에는 너무 부족한 용량, 그리고 불충분한 임상적 근거를 가진 상태입니다.
노화를 늦추고 싶다면, 지금은 스퍼미딘 보다는, 새로운 성분을 찾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생활면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네소타 극단적인 기아실험, 우리는 제대로 이해했나? (4) | 2025.08.29 |
---|---|
요즘 마가린은 트랜스 지방이 거의 없다 (3) | 2025.08.27 |
하버드 식단 vs. USDA 식단 – USDA가 맞다고 본다 (3) | 2025.08.25 |
후생유전학은 어떻게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3) | 2025.08.22 |
소비되는 산소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로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0) | 2025.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