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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I, 4천만 달러짜리 영양과학의 실패

by 면역이야기 2025. 8. 18.

우선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 질병해방으로 유명한 피터 아티아와, 케토제닉이 답이다, 왜 우리는 살찌는가? 설탕을 고발한다. 등으로 유명한 게리 타우브스가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피터 아티아와 그의 책 질병해방
개리 타우브스, 탄수화물이 당뇨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사람

 

 

피터 아티아는 장수의학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고 케리 타우브스는 저탄고지 식단이나 케토 식단의 옹호자이죠. 이 두 사람은 특이하게 모두 공학이나 물리학 전공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피터 아티아는 정말 진지한 의사이고 개리 타우브스는 저널리즘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세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통일장 이론 같은 것이죠. 그래서 대체로 생물학적인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이해하려 하고 그 결과로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피터 아티아는 성향 자체는 기능의학을 약간 선호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wishful thinking은 거의 없는 현실주의자인 것 같고, 그나마 쇼닥터들 사이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분인데, 뭐랄까요. 아직 면역학에 대해서 잘 모를때, 활동한 의사라서 10년 전의 주장을 하는 듯한 느낌이긴 합니다. 

 

 

 

1. 시작: 과학을 되살리겠다는 선언

2012년, 두 명의 비판적 사상가가 손을 맞잡았습니다. 한 명은 과학 저널리스트 게리 토웁스(Gary Taubes), 또 한 명은 외과의사 출신의 대사 전문가 피터 아티아(Peter Attia)였습니다.
그들은 현대 영양학이 과학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방이 나쁘다", "칼로리가 전부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살이 빠진다"와 같은 단순한 주장들이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지만, 이를 실제로 증명한 실험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기존의 관찰 연구(epidemiology) 대신, 정밀한 실험 과학에 기반한 영양 연구를 직접 설계하고 실행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NuSI(Nutrition Science Initiative)라는 비영리 단체를 창립하였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우리는 탄수화물-인슐린 가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것이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영양학계의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렀습니다. 즉, 세상을 바꿀 과학을 만들겠다는 의지였습니다.


2. 자금과 연구의 황금기

놀랍게도 이 야심찬 계획은 4,000만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당시 진보적 과학 후원자였던 Laura & John Arnold 재단이 초기 470만 달러, 이후 수년 간 3천만 달러 이상을 지원하였습니다.

로라 & 존 아놀드, 출처: 아놀드 벤처스

 

참고로 지금은 이 재단의 이름이 Arnold Ventures로 바뀌었습니다.  


NuSI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NIH(미국 국립보건원)와 협력하여 총 4건의 임상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 에너지 소비량 비교 실험: 탄수화물 제한식과 지방 제한식의 대사적 차이를 측정
  • 인슐린 반응 실험: 다이어트 유형별 혈당 및 인슐린 반응 정량 측정
  • 지속적인 칼로리 조절 실험: 실제 체중 감량에 영향을 주는 결정 요인 탐색

이들 연구는 모두 무작위배정, 대조군, 엄격한 식단 통제와 같은 황금 표준을 적용하여 설계되었고, NuSI는 “우리가 직접 이 실험을 설계하고, 예산을 조정하고, 결과를 분석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3. 과학이 신념과 충돌하다

하지만 과학은 항상 기대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초기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탄수화물/인슐린(C/I) 가설은 기대만큼 강력하게 지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Kevin Hall 박사가 주도한 NuSI 공동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탄수화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더라도, 총 열량이 동일한 경우 체중 감량 효과는 예상보다 작았고, 인슐린 반응 역시 일부 조건에서만 유의미하게 달라졌습니다. 즉,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단일 가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NuSI 창립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 깊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연구진은 “우리는 데이터를 해석했을 뿐이며, 과학은 예측을 따라야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창립자 측은 “이 결과는 우리가 의도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했습니다.
결국, NuSI는 과학적 독립성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가설을 증명하길 바라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4. 무너지는 조직

이런 갈등이 표면화되자, 자금 지원자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Arnold 재단은 NuSI에 대한 지원을 연간 계약에서 3개월 단위 단기 계약으로 전환하며, 조직의 안정성은 무너졌습니다.
2015년 말, 피터 아티아가 CEO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6년 초 NuSI는 샌디에이고 사무실을 폐쇄하며 사실상 조직 해산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몇 년간 NuSI는 명맥만 유지한 채 활동이 멈추었고, 공식 웹사이트조차 더 이상 관리되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2021년에 해체되었다”고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2016년이 NuSI의 마지막 해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5. 과학은 실패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실패한 것은 NuSI라는 조직과 그 가설을 미리 정해놓고 실험을 설계한 방식이지, 과학 자체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NuSI의 연구들은 영양과 대사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예를 들어:

  • 모든 탄수화물이 나쁜 것이 아님
  • 개인마다 대사 반응이 다르며, 단일 가설로 설명하기 어렵다
  • 총 칼로리 섭취량, 식이 섬유, 식사 타이밍, 대사 유연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작동함

NuSI의 의도는 순수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신념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신념이 틀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도구라는 점을 잊을 때, 아무리 거대한 프로젝트라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6. NuSI가 남긴 교훈

NuSI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영양학의 방법론적 전환을 촉진한 계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깁니다:

  • 과학은 특정 신념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연구는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대답은 예상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 자금, 이념, 연구의 독립성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존재하며, 이를 잘 조율해야 진정한 과학이 가능하다

마무리하며

NuSI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 시도는 의미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과 영양을 둘러싼 수많은 이론들이 등장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학은 그 어떤 이론보다도 겸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NuSI의 실패는 ‘탄수화물이 나쁘다’ 혹은 ‘지방이 좋다’는 단순한 결론을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웠겠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더 복잡하고 정직한 시각을 남겨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