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7월 10일 아침 11시, 32세의 호주 의사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이 놀라운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박테리아를 배양한 액체를 직접 마셨습니다. 이 극적인 자가실험은 의학사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21년 후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스트레스와 매운 음식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지던 위궤양이 실제로는 단순한 감염성 질환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마셜의 발견은 연간 30억 달러 규모의 제산제 산업과 50년간 확립된 의학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과학적 용기와 끈기가 어떻게 수백만 명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현재 위궤양 환자의 90% 이상이 단순한 항생제 치료로 완치되는 것은 모두 이 한 번의 용감한 실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배리 마셜 박사는 2001년 한국 야쿠르트 사가 유산균을 이용한 위나선균 억제와 관련된 임상시험결과를 이용하여 광고 제의를 했고, 그 결과 한국에서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의 모델이 되었으며 그 이후에 노벨상을 받아서 한국인에게는 매우 친숙한 학자입니다.
평범한 의사에서 혁명가로
배리 마셜은 1951년 서호주의 작은 광산 도시 칼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기계공, 어머니는 간호사였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고 실험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습니다. 8세 때부터 전자기기를 만들고, 심지어 폭탄 제조까지 시도할 정도로 대담한 아이였죠.
의학을 선택한 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원래 전기공학과 의학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독감으로 인한 결석으로 수학 실력이 떨어지자 의학을 택했습니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 의학사 학위를 받고, 1975년부터 로열 퍼스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과를 순환했습니다.
운명적인 만남은 1981년 하반기에 일어났습니다. 위장병학과 로테이션 중 지하실에 있는 병리학과 사무실에서 로빈 워런(Robin Warren)이라는 조용한 병리학자를 만났습니다. 워런은 1979년부터 위 조직 검사에서 신비로운 나선형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있었지만, 이를 연구할 임상의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성격이 정반대였습니다. 워런은 조용하고 차분한 관찰자였고, 마샬은 대담하고 활동적인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워런의 "조용한 끈기"와 마샬의 "열정적인 에너지"가 만나면서 의학사를 바꿀 협력이 시작되었습니다.
50년 통념에 도전하다
1980년대 초까지 의학계는 위궤양의 원인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 매운 음식, 과도한 위산 분비가 주범이었죠. 위의 강한 산성 환경(pH 1-2)에서는 어떤 세균도 살 수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상식이었습니다.
치료법도 이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제산제와 위산 억제제를 복용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위를 잘라내는 수술까지 했죠. 하지만 이런 치료법들은 일시적 효과만 있을 뿐, 궤양이 계속 재발했습니다.
로빈 워런이 처음 그 신비로운 박테리아를 발견한 것은 1979년 6월 11일,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이었습니다. 일상적인 위 조직 검사에서 "조약돌 모양" 표본에 푸르스름한 선을 발견했는데, 고배율 현미경으로 보니 수많은 작은 굽은 간균들이었습니다. 이 세균들은 위의 보호 점액층 아래에 살고 있었고, 위염이 있는 곳에서만 나타났습니다.
2년간 혼자 연구하던 워런은 동료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그의 아내 Win만이 그를 지지했죠. 임상의들은 "만약 이 세균이 원인이라면 왜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운명을 바꾼 부활절 휴가
마샬과 워런은 1981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십이지장궤양 환자 13명 모두에서, 위궤양 환자 22명 중 18명에서 이 신비로운 박테리아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박테리아를 배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30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했습니다. 실험실 기술자들이 2일 후 배양 접시를 버리는 관행 때문이었죠.
운명을 바꾼 순간이 1982년 부활절에 찾아왔습니다. 실험실 직원들이 35번째 배양 접시를 버리는 것을 잊고 5일간 방치했습니다. 부활절 휴일이 끝나고 4월 14일 실험실로 돌아온 마샬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배양 접시에 H. pylori 균집이 자라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H. pylori가 다른 세균보다 성장이 훨씬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학계의 차가운 반응
1983년 호주 위장병학회에서 마샬의 연구 발표는 67개 초록 중 하위 20%에 랭크되며 거부당했습니다. 위장병학자들에게 세균이 궤양을 유발한다는 개념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고 마샬은 회상합니다.
1983년 The Lancet에 논문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미미했습니다. 어떤 동료심사자도 출판을 추천하지 않았고, 편집자 David Sharp의 결단으로 겨우 출판될 수 있었죠. 의학계는 "미친 사람이 미친 소리를 한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젊은 연구자였던 마샬은 연구비 확보와 발표 기회 부족에 좌절했습니다. 환자들이 궤양으로 고통받고 있는 동안 단순한 항생제 치료만으로 치료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의학계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도 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그냥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세균이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던 것입니다.
목숨을 건 실험
1984년 7월, 마샬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험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코흐의 공리(Koch's postulates)를 증명하기 위해서였죠. 코흐의 공리란 특정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임을 증명하는 4가지 조건입니다.
사전에 내시경 검사로 건강한 위 점막을 확인하고, H. pylori 음성임을 확인했습니다. 소화불량 환자로부터 H. pylori를 배양하고,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을 미리 복용했습니다.
1984년 7월 10일 아침 11시, 32세의 마샬은 2개의 배양 플레이트에서 키운 H. pylori 균을 현탁액으로 만들어 마셨습니다. 후에 그는 "만약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면 사진을 찍어뒀을 텐데!"라고 회상했습니다.
처음 4일간은 별다른 증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5일째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복부 팽만감과 식욕 저하가 시작되었고, 심한 구취가 났습니다.
5일째부터 8일째까지 매일 아침 6시경 산성이 없는 맑은 액체를 구토했습니다. 8일째 내시경 검사 결과 심한 활동성 위염이 확인되었고, H. pylori 배양도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아내 Adrienne의 압력으로 14일째 실험을 중단하고 비스무스와 메트로니다졸로 치료했습니다. 다행히 빠른 회복으로 후유증 없이 완치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꾼 10년의 인내
자가실험 결과는 1985년 Medical Journal of Australia에 발표되었고, 해당 저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학계의 반응은 차갑했습니다.
전환점은 1994년 2월에 찾아왔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합의 개발 회의에서 공식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십이지장궤양과 위궤양 치료의 핵심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탐지와 제거"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마샬은 "10년을 기다려온 이 날이었다. 안도와 만족감을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그동안 일부 환자들이 은밀히 항생제 치료를 요청해왔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노벨상과 의학사의 전환
2005년 10월 3일, 배리 마샬과 로빈 워런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이유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세균의 발견과 위염 및 소화성 궤양 질환에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이는 1928년 이후 처음으로 세균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례였습니다. 흥미롭게도 1984년 첫 번째 Lancet 논문 발표 후 워런의 부인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었는데, 마샬은 "1986년쯤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1년이 걸렸습니다.
현재의 치료법과 놀라운 효과
현재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치료법은 표준 삼제요법이 주로 사용됩니다. 양성자펌프억제제(위산 억제제)와 아목시실린, 클라리스로마이신을 14일간 복용하는 것입니다. 제균율은 70-85% 수준이며, 항생제 내성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치료 효과는 극적입니다. 위궤양의 90% 이상, 십이지장궤양의 95% 이상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와 관련되어 있으며, 제균 치료 후 궤양 재발률이 80-90%에서 5-10%로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4억 명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되어 있으며, 감염률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아프리카(70.1%)와 남미(72-82%)에서 높고, 핀란드(9.1%)와 뉴질랜드(9.2%)에서 낮습니다. 한국은 54% 수준으로 최근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위암 예방의 새로운 전망
1994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위암의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감염자는 일반인보다 위암 발생 위험이 3-6배 높으며, 만성 위염에서 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을 거쳐 위암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밝혀졌습니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인구 집단 스크리닝을 통한 위암 예방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헬리코박터 위염 치료가 보험 적용되며, 제균 치료를 통해 위암 발생률을 50% 감소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의학사에 남긴 교훈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발견은 의학적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만성 질환이 비감염성 질환이라는 기존 관점에서 만성 질환도 감염성 질환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발견은 여러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째, 기존 정설에 도전하는 용기의 중요성입니다. 50년간 확립된 의학 지식에 맞서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끈기 있는 연구가 결국 승리했습니다.
둘째, 단순한 기술로도 중요한 발견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시경, 은염색, 미생물 배양 등 기존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것이 혁명적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셋째, 과학적 회의주의와 새로운 발견 수용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의학계의 20년간의 저항은 과도했지만, 동시에 과학적 엄밀성의 중요성도 보여주었습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현재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항생제 내성 증가로 인한 치료 어려움이 주요 과제입니다. 클라리스로마이신 내성률이 증가하면서 개인 맞춤형 치료법 개발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또한 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외에도 다른 세균들이 위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으며, 예방 백신 개발도 진행 중입니다.
흥미롭게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일부 보호 효과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식도암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제균 치료의 장단점에 대한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배리 마샬과 로빈 워런의 이야기는 과학적 용기와 끈기가 어떻게 인류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그들의 발견은 전 세계 수억 명의 궤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의학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마샬이 말했듯이 "과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실과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진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