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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면역

면역세포는 무엇을 보고 반응할까?

by 면역이야기 2025. 7. 3.

PAMP, DAMP, 그리고 세포의 자멸사

면역세포는 인식하는 물질에 따라서 면역반응이 달라진다.


1. 면역반응은 '항원'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면역세포가 ‘항원’이라는 이물질을 만나면 반응한다고 배워왔습니다. 학교 수업에서도 ‘항원-항체 반응’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항원이 마치 면역 반응의 출발점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면역계, 특히 선천면역계(innate immune system)가 처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항원이 아니라 조금 더 정교한 신호체계, 즉 PAMP와 DAMP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어떤 경고도 울리지 않고, 조용히 ‘청소만’ 요청하는 신호도 존재합니다.


2. PAMP: 외부 침입자의 지문

PAMP는 Pathogen-Associated Molecular Patterns의 줄임말로, 병원체 고유의 분자 구조를 말합니다. 말이 상당히 어려운 데 면역세포가 인식하는 미생물들의 공통적인 패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의 병원체는 우리 몸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면역계는 이 낯선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침입 여부를 빠르게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그람음성균의 세포벽을 이루는 LPS(내독소)는 TLR4에 의해 인식되며, 바이러스의 이중가닥 RNA는 TLR3의 작동 신호입니다. 곰팡이 세포벽에 존재하는 베타글루칸은 Dectin-1이라는 수용체가 감지합니다. 이처럼 PAMP는 ‘외부’에서 온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이며, 면역계는 이 신호를 통해 신속하게 대응 태세를 갖춥니다. 사람이나 바이러스가 같은 RNA나 DNA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DNA는 메틸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면역세포는 이것을 쉽게 구분합니다. 

 

어쨌거나, 병원체 유래의 물질은 PAMP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물질들의 특징은 대체로 매우 강력한 염증반응을 유도하는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3. DAMP: 내부 손상의 경고음

병원균이 없더라도 면역반응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외상, 화상, 조직 괴사, 종양 성장 등 다양한 상황에서 세포 손상이 발생하면, 세포 내부의 구성물들이 외부로 유출됩니다. 면역계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분포를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이것이 바로 DAMP(Damage-Associated Molecular Patterns)입니다.

 

예컨대, 세포의 에너지원인 ATP, 염색질 단백질인 HMGB1, 미토콘드리아 DNA, uric acid 등은 평소에 세포 내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지만, 손상 시 세포 바깥으로 방출되면 선천면역 수용체(NLRP3, TLR9 등)에 의해 인식되어 강한 염증반응을 유도합니다. DAMP는 병원체와 상관없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신호입니다.

 

과거에 TLR4 라는 센서에 그람음성균에서 유래한 LPS라는 물질이 결합하는 것을 알아냈지만, 후에 학자들은 TLR4들이 이것말고 우리 몸에서 유래한 다양한 물질이 결합하는 것을 알아냈는데, 어떤 의미로 이것도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앞 포스팅에서 면역은 청소와 유사하다고 말했는데, 특히 이것은 DAMP와 같은 물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물질들은 외부의 병원체가 아니기 때문에 군인으로 묘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세포자멸사와 청소신호: 조용한 퇴장

하지만 모든 세포 죽음이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포가 죽는 방식에 따라 면역계의 반응도 달라집니다. 괴사(necrosis)는 세포가 터지듯 죽으며 DAMP를 대량으로 방출하지만, 세포자멸사(apoptosis)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Apoptosis는 세포가 조용하고 질서 있게 해체되는 과정입니다. 이때 생기는 apoptotic body는 주변 대식세포에게 “나는 계획된 죽음을 맞이했으니, 조용히 청소해 주세요”라는 청소신호(clean-up signal)를 보냅니다. 대식세포는 phosphatidylserine 같은 ‘eat-me signal’을 인식하여, MerTK, TIM-4, CD36 등의 수용체를 통해 apoptotic body를 염증 없이 제거합니다. 이는 면역 억제성 반응, 혹은 면역 관용을 유도하며, 자가면역질환을 막는 데 필수적인 기전입니다.


5. 선천면역은 감시자이자 청소부입니다

PAMP와 DAMP, 그리고 청소신호를 살펴보면 선천면역계는 단순한 병원균 감지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상황을 분별하고, 판단하며, 경고하거나 또는 조용히 처리하는 복합적인 감시자입니다.

구분 의미 대표 물질

면역 반응

PAMP 병원체 고유 분자 패턴 LPS, 바이러스 RNA 강한 염증 반응 유도
DAMP 손상 세포에서 유래한 위험 신호 ATP, uric acid 염증 유도
청소신호 계획된 세포사멸에서의 탐식 신호 apoptotic body 비염증성 포식, 면역 억제 유도

 


6. 마무리하며: 면역은 ‘반응’ 이전에 ‘대응해야 하는 물질에 판단’입니다

면역은 단순히 싸우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판단하고 분류하며, 선택적으로 반응하거나 아무 일 없던 듯 조용히 처리하는 일에 씁니다.


‘항원’은 사실 선천면역 보다는 적응면역에서 다루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선천면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PAMP와 DAMP, 그리고 청소신호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면역세포가 DAMP를 제거한다는 것만 알아도 면역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